1986년, 서던메소디스트대학교의 한 심리학자가 학생들에게 작은 부탁을 하나 했어요. 나흘 연속으로 하루 15분씩, 인생에서 가장 괴로웠던 일을 글로 써 달라는 거였죠. 비교 집단은 자기 신발이나 방, 그날 한 일을 썼어요. 그러고는 다들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갔어요.
6개월 뒤, 제임스 페니베이커는 대학 보건센터 기록을 들여다봤어요. 힘든 일을 쓴 학생들이 진료를 받으러 간 횟수는 신발 얘기를 쓴 학생들의 절반 정도였어요.
그 뒤 40년 동안 이 실험을 그대로 되풀이하고, 조건을 바꿔 보고, 반박하는 연구가 이어졌어요. 그래도 핵심 결과는 심리학의 웬만한 연구보다 잘 버텨 왔죠. 힘든 일을 문장으로 옮기고 나면, 그 일이 나에게 미치는 힘이 달라진다는 것. 말로 하는 게 아니라 글로 쓰는 거예요. 단어를 고르고, 순서대로, 하나씩 이어 가야 한다는 것. 그 과정 어딘가에서 형체 없던 짐이 모서리가 있는 물건으로 바뀌어요. 모서리가 있는 건 내려놓을 수 있죠.
낯선 사람 효과
두 번째 발견은 심리학의 다른 구석에서 나왔어요. 이건 한층 더 뜻밖이에요.
2014년, 니컬러스 에플리와 줄리아나 슈뢰더는 시카고에서 기차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에게 대부분이 질색하는 일을 부탁했어요. 옆자리에 앉은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어 보라는 거였죠. 다들 썩 유쾌하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어요. 그런데 끝나고 나서는 거의 모두가 그게 출퇴근길에서 제일 좋았던 시간이라고 답했어요. 출퇴근길이 제일 별로였던 건 오히려 조용히 앉아 간 사람들이었어요. 그렇게 하라는 지시를 받았고, 원래도 그러고 싶어 했던 사람들이요.
같은 해, 길리언 샌드스트롬과 엘리자베스 던도 더 작은 규모로 비슷한 결과를 보여 줬어요. 카페 바리스타나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사람처럼, 얼굴만 아는 사람이나 낯선 사람과 짧게 말을 주고받은 일이 많은 날일수록 사람들은 더 행복하다고 답했어요. 어딘가에 속해 있다는 느낌도 더 강했고요. 약한 연결은 알고 보면 약하지 않아요.
이 둘보다 한참 전인 1975년, 지크 루빈은 긴 기차 여행을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미 아는 일을 기록으로 남겼어요. 사람들은 가족에게도 한 번도 안 한 얘기를 낯선 사람에게는 한다는 것. 이유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아요. 낯선 사람과는 얽힌 과거가 없어요. 나중에 그 얘기로 약점을 잡을 수도 없고, 다음 술자리에서 나를 보는 눈이 달라질 일도 없죠. 낯선 사람 앞에선 솔직해지는 데 드는 대가가 거의 없어요. 그리고 후련함의 대부분은 솔직함에서 나와요.
친구한테 카톡하면 왜 안 풀릴까?
낯선 사람보다는 친구가 더 도움이 될 것 같죠. 어떤 일엔 실제로 그래요. 하지만 정말 마음에 짊어지고 있는 그 일이라면, 친구야말로 제일 안 맞는 독자일 때가 많아요. 이유는 세 가지예요.
나를 알아요. 그러니 내가 '이래야 하는' 모습도 알죠. 결국 그 모습에 맞춰 쓰게 되고, 정말 솔직한 한 문장은 끝내 못 치고 말아요.
대화예요. 카톡이 오면 대화를 이어 가야 할 것 같죠. 마지막 메시지라는 게 없어요. 아무것도 끝나지 않으니, 아무것도 내려놓을 수 없어요.
빨라요. 페니베이커 실험의 후련함은 그 15분에서 나왔어요. 문장을 하나하나 지어 올려야 했던 그 시간에서요. 카톡은 30초면 끝나요.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전해지지만, 무게는 있던 자리에 그대로 남아요.
두 발견이 만나는 곳, 편지
이제 둘을 합쳐 봐요. 낯선 사람에게 쓰는 편지는 표현적 글쓰기예요(문장을 직접 지어야 하니까요). 받는 사람은 솔직해도 잃을 게 별로 없는 바로 그 독자고요(나를 모르니까요). 게다가 끝이 있는 형식이에요(편지엔 마지막 줄이 있으니까요). 두 갈래의 연구에 딱 맞는 형식을 하나 설계해 달라고 하면, 둘 다 바로 이걸 내놓을 거예요. 편지는 거의 우연처럼 그런 형식이 된 셈이죠.
사람들은 연구가 나오기 한참 전부터 이걸 알아챘어요. 펜팔이 이메일 시대에도 살아남은 것도, 고민 상담 칼럼 「디어 애비」가 60년 동안 이어진 것도, 어느 종교에나 나름의 익명 고백이 있는 것도 다 그래서예요. 누군가에게 써 놓고 끝내 부치지 못한 편지 한 통쯤 서랍에 넣어 둔 사람이 이렇게 많은 것도요. 후련함은 쓰는 데 있었어요. 부치는 건 선택이었고요.
직접 써 보면 이런 느낌
Kindredly에서 편지를 쓰는 사람들은 표현만 다를 뿐 다들 같은 얘기를 해요. 그러니 이 형식이 무슨 일을 하는지 담백하게 말해 볼게요.
이번 주에 있었던 일 하나를 받는 사람을 정하지 않고 솔직하게 써요. 편지는 나와 글결이 비슷한 낯선 사람 몇 명에게 가요. 그중 한 사람이 답장을 보내요. 대개는 조언이 아니라 자기만의 작은 얘기를 담아서요. 그러면 꽉 쥐고 있는 줄도 몰랐던 뭔가가 내 안에서 스르르 풀려요. 세상 어딘가, 평생 만날 일 없는 누군가가 꾸밈없는 내 얘기를 읽고 그래도 답장을 써 줬으니까요.
심리 치료는 아니에요. 저희도 그렇게 부를 생각은 없고요. 심리 치료보다 더 오래되고, 더 작은 거예요. 기차 옆자리에서 일어나는 그 일을 문장으로 하는 거죠.
이 실험, 직접 해 보고 싶다면
페니베이커의 지침은 간단했고, 지금도 그대로 통해요. 15분. 진짜 얘기. 맞춤법은 신경 쓰지 말 것. 아무한테도 보여 주지 말 것. 그래도 누군가 읽어 줬으면 좋겠다면요. 그 얘기로 약점을 잡을 수도 없고, 나를 다르게 볼 일도 없고, 답장까지 써 줄 누군가가요. 마침 오늘 책상엔 편지가 열다섯 통 놓여 있어요. 그중 한 통은 아마 내가 쓰려던 얘기와 같은 일을 담고 있을 거예요. 그 편지부터 읽어 봐요. 내 편지는 그다음에 쓰고요.
더 궁금한 분들을 위한 출처: Pennebaker & Beall, “Confronting a traumatic event” (1986) · Epley & Schroeder, “Mistakenly seeking solitude” (2014) · Sandstrom & Dunn, “Social interactions and well-being: the surprising power of weak ties” (2014) · Rubin, “Disclosing oneself to a stranger” (1975).